음악을 다시 잡았을 때
나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악보를 읽는 것도 서툴렀고
이론이라고 할 만한 건 거의 없었다.
청음도 남들보다 늦게 열린 편이라
좋고 나쁨을 설명하는 언어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방법은 하나였다.
그냥 많이 만들어보는 것.

한 곡을 제대로 만드는 법을 모르면
열 곡, 스무 곡, 서른 곡을 만들어서
그중 가장 듣기 좋은 걸 고르는 방식.

부끄럽지만, 그게 내가 아는 최선이었다.

사실 이런 방식은 처음이 아니었다.
대학교 동아리 시절, 나는 팀에서 가장 느리게 배우던 사람이었다.
악기에서 소리가 잘 나지 않아
늘 마지막까지 남아 연습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반복해서 익히는 방식’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배움의 형태였다.

그렇게 다시 1년을 보냈다.
퇴근하고 씻지도 않은 채 앉아서
또 한 곡을 만들고
그다음 날에는 그 곡의 다른 버전을 만들고.

왜인지 모르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왜 이 버전이 더 좋게 들리지?”
처음에는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감각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1000곡쯤 만들었을 때,
비로소 아주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좋은 버전과 아쉬운 버전을
듣기만 해도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왜 좋은지, 무엇이 다른지 설명하진 못했지만
귀가 조금씩 열린다는 걸 느꼈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
살아 있는 감각이 다시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부끄러움도 따라왔다.
사람들은 노래가 좋다고 말해주고
어떤 곡들은 상을 받기도 했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는 늘
“나는 아직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닌데…”
라는 감정이 남아 있었다.

한 곡 뒤에 숨어 있는
수십 번의 실패
수백 번의 시행착오
밤새 만든 노래가 아무 반응 없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음악을 ‘만든다’기보다
음악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1000곡을 만들었다고 해서
1000개의 작품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긴 시간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조금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래 놓지 못했던 마음을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다시 꺼내 들었다.

늦었다고 생각했던 나이였지만
희한하게도 지금이 아니라면
절대로 올 수 없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한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나를 오래 붙잡아온 마음을 이제야 받아들이며